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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고창,사호공,오익창의,명량해전,참전,공적글.사호집내용.

작성자

오태규

작성일

2013-10-08 (화) 02:01

ㆍ조회: 2583    
명량해전축제에...제안하다...(전남도청에,제안하다...명량해전축제위원회에,제안하다!.)...|○ 자유게시판
오박사(태규) | 조회 15 |추천 0 |2013.09.08. 12:05 http://cafe.daum.net/ohssipeople/IdhT/1325  




명량해전축제에는?.그동안,근거가없는.추상적인.상상의장면들이.많아서.혼란스러웠다.그러나.이제는.사호집이,발표되어,이,사실들을.해군사관학교와.해군역사연구소와.연계하여.가능성,의사실,유무을.전남도청담당자들이.해군당국과.협의하여.조사.연구할필요가있다.그런데.아직도.쇠사슬문제.승전의,원인들이,혼란스럽게.난무하고있다.이제는.전남도청에서.앞장서서.정리해야한다.그리고.정리.하여.명량해전축제을.새롭게.역사사실에.근거하여.축제장을.더욱감동스럽게.사실적으로.꾸미고.만들어서.참여자들.관광객들에게.진정한감동을.줄수있도록.만들어야한다.목마른병사들에게.물이없어.동과(박)을먹게한.사실을..동과먹기,대회을열고..조총을20여개,만들어서..조총방탄막..조총쏘기대회을..만들고..굼주린병사들에게..쌀과곡식을전달하고..추위에..떠는..병사들에게..전투복이,아닌..민간의,솜옷을전달하는,대회을마련하고..13척의..이순신장군.함선뒤에..1000척의민간,피난선을배치하여.성곽을만들어.북치고.괭과리.치며..전쟁을응원하는..함성이들이도록..명량해전의.축제의.방향이.이제는.혁신되어야한다..이방법이..어느곳에서도..흉내낼수없는..감동으로..국민들과.관광객들에게.감동을줄것이다..축제내용을바꾸어야한다..
2013년.9월8일.서울에서.사호집.발행자.오태규.제안.
명량해전의...승리는?...어떻게...만들어...졌는가?...|○ 자유게시판
오박사(태규) | 조회 0 |추천 0 |2013.09.07. 22:32 http://cafe.daum.net/ohssipeople/IdhT/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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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축제을...새로운...방식으로...연출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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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축제을,역사,사실에,근거하여,새롭게,구성해야,관광객들에게,감동을줍니다..새롭게,연구하고,꾸며야합니다.
내용 명량해전축제을,역사사실에,근거하여,감격스럽게,새로이,만들어야합니다..예을들면?..오익창의사호집에..나오는상황을..단편적으로..장면을..연출해보세요?..동아(동과)(물먹기)먹기대회..조총쏘기대회--솜이불,방탄막,방폐막--시험대회..전라도,사대부..피난선1000척..이순신함대..13척.지원하기..1000척,민간인,이순신함대.지원하기(북치며.괭과리치며,응원하기)...일본배가..침물하고..파괴될때에?...1000척의배에서...환호하며...기뻐날뛰는..군중모습...육지에서...환호하는...민중의모습?...이런장면을?...극적으로...보여주는대회을...만들기위해서는...연출자들의...연구가필요하다...그러나...어려움은?..있겠으나..88올림픽의..축구시합..함성에..비유될수있겠는가?...임진왜란..7년동안에..수백만명의..조선민중을..죽인..침략자..일본왜군함대을...133척을...쳐부수는...장면을...명량해전에서..직접보며..응원하는...민간배,1000척의..기쁨의...환성은?...명량해전바다을...기쁨의통곡의..바다로..만들었을것이다...이런,사실적장면,들을...이제는...명량해전축제에...부분적으로...연출할수있을때에?..명량해전은...국민들에게...관광객들에게..감동을줄수있을것이다...모타보트들의...연막탄?..불꽃놀이축제?..정도로는?...역사성이없어...진정한감동을줄수없다..이제는..해군연구소와..실증적인..연구을하여..축제에...새로운,아이템을..넣어야한다... 2013년.9월11일.서울에서...오태규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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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의...승리는?...오익창의...사호집에...상세한,상황설명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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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척의...조선수군에게는?...식량도없었고...옷도없었다...전투시에..먹을물도..없었다...이, 어려운...상황을...극복한...전투상황이...상세히..기록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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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장군이...제일...걱정하였던것이...일본군,수군의...조총이였다...

조선수군이...제일..겁먹었던것이...근접전에서...일본조총의...명중률이...조선수군의...활보다도...정확했기에...조총탄에...맞으면...쓰러지는...조선수군을..보면..

조선수군이...겁을먹고...싸우려 하지...않았다...

이것은?...조선수군의...사기문제와도...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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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호집에...기록된...기록에...의하면?...

오익창의...제안에...의하여...창안된...방페막,작전?...

일본,조총탄을..막을수있는...방탄막..을...발명한것이다...

그것도...순간적인...지혜로...발명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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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당시에...전라도,전체가,일본군에게...짓밟히고..있던...시기여서...

전라도...사대부들이...배을타고...외딴섬으로...피난가려고...전남해안에는...

사대부들의...피난선들이...보호용으로..활과..화살등의...무기을실고...식량과..옷...이부자리...등..살림살이,을..실고서...피난가려고...전남지역...항구에...몰려있었단다...피난선...1000여척의...배가...명량해전지역에..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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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피난선...1000여척의...배에서...솜,이부자리...100여개,을...징발하여...

솜,이브자리을...바닷물에...직시어서...일본조총탄의...방탄막으로...사용하니...

일본조총탄알이...바닷물이..적신...이부자리을...뚫지...못했다는것이다....

이에...조선수군들은...일본조총탄을...걱정..안해도..되니...사기가..충천하여...

맹렬하게...공격하여...대승...을,하게되고...조선수군의...전사자는...극소수..적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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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계산에...의하면?...대략...

이순신,장군의...배가...13척...이였으니...

징발한...솜,이브자리...숫자가...100여채...였다니?...100개--130개..정도로보면?..

이순신장군...13척...배...1척당...솜,이브자리...10개정도가...방탄막으로...사용했다고...본다면?....

솜,이브자리...1개당...길이가...150CM에서...200CM,로...계산해보면?...

배,한척당...솜이브자리,10개..길이면?...약20M...정도..방탄막을...친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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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논술한...계산은?...훗날에...언젠가는?...

한국...해군사관학교...와...해군,역사연구소에서...실증적으로...실험해볼필요가있고...실험적으로...실증된..다면?...명량해전,축제장에서...실현,해보는것도...좋은...아이템...이,될수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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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모든..전쟁사에?....특히...해전에서...

조선수군의...화살과...일본수군의...조총싸움에서....

조선민족의...잠자리...솜,이브자리을...물에..적시어서...조총탄환..을,막는...방탄방폐막을...창안하여...사용하여...승리하였다는것은?....

세계역사에...없는...대단한...창안...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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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호집기록에...의하면?...

전투중에...목마른...병사들에게...동아...라는...박(물)을먹이여서..목마름을..해결하였고...배고픈,병사..들에게...피난선에서...먹을것...식량을...조달하였고...추위에...떠는...병사들에게...피난선에서...옷을걷어서...병사들에게...입히여서...추위을...면하게...하였다니?...이,상세한기록에...의하면...전쟁물자보급과...민중의지원이...민중의지혜가...결집되어...승리을..이룰수있었다..는것이다...

명량해전의...승리의...기적이...이순신장군을..도와서...오익창,과...사대부들이...혼연일체가...되어...싸워서...승리할수있었다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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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요소중에...더욱중요한...것이 있는데?...

피난선...1000여척이...각기...무기(활,화살등)을...실은체로...

이순신장군의...배..13척...뒤에...진을쳐서...바다위에...배로써...성,을만들었다...

이,1000여척의..배에서...응원하고..지원하고...북소리울리며..괭과리을치며...응원을하니...조선의병사들의..사기가...하늘을...덮어...하늘도..감동했으리라!...

이,배의성곽은?...웅장하였다니?...일본군이...10여척의...패잔병력을...상상했을...일본해군에게...위협적으로...겁을먹게...하였을것이다...

더욱이...이순신장군과...조선수군에겐...용기와...분전하는..용기을..주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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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같은...모든기록들이...오익창의..사호집에...상세히...기록되어있다...

언젠가는?..이,기록의,가치가...해군역사연구에...실증적고증이...있어야할것이다...

2013년 9월 7일...서울에서... 오 태 규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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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참전 오익창 ‘사호집’ 발굴

1597년 명량대첩 당시 통제사 이순신은 당사도(전남 신안군 암태면 추정)를 둘러보고 마음에 들어 그곳으로 진을 옮기려 했다. 그런데 문신 오익창이 “이곳은 석벽이 깎아지른 듯하고 바닷물 빛이 감청색으로 신물(神物)의 굴이 있는 곳이니 범할 수 없습니다”라고 조언했다. 이를 받아들인 이순신은 당사도에 다가가지 않았다. 반면 조선을 도와 참전했던 명나라 진린(陳璘) 도독은 이후 이곳에 진을 친 뒤 거센 비바람과 천둥번개를 만났다.

이처럼 명량대첩 당시의 전황을 생생하게 기록한 문집이 공개됐다.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은 명량대첩에 참전했던 사호(沙湖) 오익창(1557∼1635)의 문집 ‘사호집(沙湖集·사진)’을 발굴했다고 18일 밝혔다. 오익창은 전북 고창 출신으로 명량대첩에서 군수품을 운반하고 거북선 제조에 참여했다. 1773년에 간행된 사호집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자료다. 노 소장은 오익창의 후손을 통해 사호집 원본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 책에 대해 “명량대첩 때 불과 전함 12척으로 왜군의 전함 133척을 격파한 장수들에 대한 지원 상황과 여러 위기 상황이 상세히 기록돼 있어 명량대첩 연구에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사호집에는 명량대첩 당시 전세가 불리해지자 사대부들이 배 1000여 척을 타고 여러 섬으로 몸을 피하려 했는데, 오익창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꿔 이순신 진영을 지원해 승리로 이끌었다는 일화도 나온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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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오씨의역사....사호선생....사호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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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대전 기록 '사호집' 발굴…“이순신 지면 울타리 무너져” - 경향신문
‎ - 경향신문 - 2012년 9월 17일

명량대전의 전황을 생생히 기록한 오익창의 문집 '사호집'이 발굴됐다. 이를 발굴한 여해고전연구소 노승석 소장은 오는 19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


명량해전 전황 생생히 기록, 오익창 문집 '사호집' 발굴 - munhwa.com
‎ - 문화일보 - 2012년 9월 17일

난중일기' 전문가인 노승석 여해(汝諧)고전연구소장은 “2011년 오익창의 직계 자손으로부터 지금까지 공개된 적이 없었던 '사호집'을 입수했다”며 ...

고창출신 사호 오익창 선생의 ´사호집´ 번역·발간 - 중앙일보 뉴스
‎ - 중앙일보 - 2012년 9월 17일

【고창=뉴시스】김종효 기자 = 이순신 장군의 휘하장수로 임진왜란 당시 큰 전공을 세웠던 오익창 선생의 문집인 '사호집(沙湖集)'이 번역·발간됐다.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 명량해전 전황 생생히 기록한 ´사호집´ 공개 ...
‎ - 중앙일보 - 2012년 10월 8일

나라의 존망이 수군의 승패에 달려 있는데 지금 적들의 전함은 바다를 덮었습니다. 하지만 통제사(이순신)가 거느린 배는 매우 적습니다.”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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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 대승의 비결은?‥사대부 희생 빛나 - MBC뉴스 - news.mb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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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19.
충무공의 신임을 받던 선비출신 장수 오익창이 기록한 '사호집'을 보면 그 비밀이 풀립니다. "사대부들의 솜이불 백여 채를 걷어다가 물에 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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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번역전문 서울신문 사호집 발굴 여해고전연구소장 노승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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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19. - 임진왜란과 관련해 최고의 연구자로 알려진 여해(汝諧)고전연구소 노승석(43) 소장은 최근 명량대전의 전황을 생생히 기록한 오익창의 문집 '사호집'(沙湖集·오른쪽) ...
한글을 만나다 » 명량해전의 기록을 담은 '사호집'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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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6. 28. - 이런저런 이순신 장군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시점에서, 작년 10월 초엔 명량대첩 당시 전황을 기록한 '사호집(沙湖集)'의 내용이 처음으로 공개되어 ...
명량대첩 전황 기록한'사호집'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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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4. - 명량대첩 전황 기록한'사호집'공개한다【관광정책과】286-5250. -전남도, 6일 명량울돌목 역사교실서 호남 민초 역할 등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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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18. - 명량해전 전황 기록한 '사호집' 발굴 (서울=연합뉴스) 12척의 배로 왜군의 배 133척을 격파한 명량해전의 전황을 기록한 오익창(吳益昌. 1557-1635) ...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 명량해전 전황 생생히 기록한 '사호집'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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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9. 19. - 사호집에는 오익창이 명량해전 때 외딴 섬으로 몸을 피하려는 사대부에게 호소하는 장면이 나온다. “통제사가 패하면 우리의 울타리는 철거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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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해전 영웅, 오익창의 사호집(沙湖集) 번역 간행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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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 대승의 비결은?‥사대부 희생 빛나
MBC|이지선 기자|입력2012.09.19 22:15|수정2012.09.19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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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데스크]

◀ANC▶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에서 12척의 배로133척의 왜군과 싸워 대승을 거뒀습니다.

이 기적같은 승리는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당시 전황이 상세히 기록된 사료가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이지선 기자 보도합니다.

◀VCR▶

이순신 장군의 '12척 신화'로 유명한 명량해전.

거센 물살을 이용해 승리했다지만 왜군의 조총은 어떻게 피할 수 있었을까?

충무공의 신임을 받던 선비출신 장수 오익창이 기록한 '사호집'을 보면 그 비밀이 풀립니다.

"사대부들의 솜이불 백여 채를 걷어다가 물에 담가 적신 뒤 12척의 배에 걸었더니, 왜군의 조총 탄환이 그것을 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또 "동아를 배에 가득 싣고 군사들이 목마를 때마다 먹였더니 갈증이 해결됐다"며 "이순신 장군이 지혜로운 생각이라고 감탄했다."는 오익창 자신의 활약상도 돋보입니다.

"이순신 장군을 힘을 모아 돕는다면 살 것이요, 죽더라도 나라에 충성했다는 명분은 남을 것이다."

피난길에 나선 사대부들을 설득해 식량과 옷을 조달하게 한 것도 승리의 밑바탕이 됐습니다.

◀INT▶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난중일기', '사호집' 완역

"다른 부하들의 문집보다 사호공의 문집이 더 구체적이고 상세해서 12척의 배를 가지고 어떻게 싸웠는가를 알 수 있는.."

오씨 문중에서 415년을 간직해온 사호집이 처음으로 완역됨에 따라, 이순신과 명량해전에 관한 연구도 활기를 띨 것으로 보입니다.

MBC뉴스 이지선입니다.

(이지선 기자 ezsun@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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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2] 울돌목에서 불가능의 목을 치다

[오귀환의 디지털 사기열전 | 이순신2]

궤멸한 조선수군을 맨손으로 일으킨 이순신… 모든 지식과 역량을 쏟은 명량해전 승리의 비결



△ 한산도에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되면서 원균에게 넘겨준 조선 수군의 전력은 대략 이렇다. ‘군함 300여척, 천자포 등 대포 300문, 군량미 9914석, 화약 4천근….’

그 수군이 1597년 7월15일 거제도 해역 칠천량에서 크게 패했다. 아니, 그냥 진 것이 아니라 ‘궤멸’됐다고 할 수 있다. 삼도수군통제사 원균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달아나다 죽고, 함대는 일본군의 수륙 합동작전 앞에 무참하게 박살나고 말았다. 경상 우수사 배설이 이끌고 빠져나온 12척의 배만이 격침의 운명을 피해갈 수 있었다. 총 300척을 자랑하던 무적의 조선 수군 함대 가운데 하룻밤 사이에 160여척이 일본군에게 격파돼 남해바다에 수장됐다. 일본군은 칠천량 승리 뒤 한산도 일대와 고성 일대 포구에 남겨진 조선 수군의 배도 찾아내 모조리 불태웠다. 순신이 온 정열을 쏟아부어 일본침략군의 유일한 대항세력으로 성장시킨 조선 수군…. 그 피와 땀과 눈물로 일군 조선의 무적함대가 7년 동안의 임진왜란 기간 동안 단 한번 처음 당한 이 참패로 사실상 궤멸한 것이다. 7월18일 패전의 소식을 들은 날 순신은 <난중일기>에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무의 상태, 교서 한장만 들고…

“정유. 맑음. 새벽에 이덕필이 변홍달과 함께 와서 전하기를 16일 수군이 밤 기습을 당해 통제사 원균을 비롯해 전라 우수사 이억기, 충청수사 최호 및 여러 장수들과 많은 사람이 해를 입고 수군이 크게 패했다는 것이다. 듣고 있으려니 통곡이 터져나오는 것을 이길 길이 없다.” 순신은 이때 복권된다. 수군 전멸에 경악한 선조가 경림부원군 김명원, 병조판서 이항복, 도원수 권율 등으로부터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하시라’는 제안을 받고 동의한 것이다. 선조는 순신을 재임명한다는 교서를 내린다.

“오! 국가가 의지해 보장받은 것은 오직 수군뿐이었건만 하늘이 아직도 화 내림을 후회하지 않는지 흉적의 칼날이 다시 번뜩여 마침내 3도의 대군을 한 싸움에 다 없애버렸도다. 이제부터 바다 가까운 성읍들을 누가 막아주랴? 한산도가 함락됐으니 적이 무엇을 꺼리랴? …오로지 경은 일찍이 발탁해 수사로 임영하던 날부터 이름이 드러났고, 다시 공업을 떨치어 임진년의 대첩 후에는 변방의 군사들이 만리장성처럼 든든하게 믿었건만 지난번에 경의 직책을 갈고 죄를 입은 채로 종군하게 한 것은 사람의 도모하는 바가 착하기만 하지 않은 데서 그리 된 일이라. 이같은 패전을 당한 이제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 이제 특별히 경을 복권하고 복상 중인데도 뽑아내 백의종군으로부터 충청·전라·경상 등 3도의 수군통제사를 겸직할 것을 제수하노라.” 순신이 이 재임명 교서를 받았을 때의 정황은 어떠했을까? 조선 수군의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수군 궤멸에 따라 지상군도 곳곳에서 그대로 무너지고 있었다. 수령들은 ‘적이 다시 침략해온다’는 막연한 정보만 갖고 무리하게 청야령(淸野令·적군이 아군의 시설물, 식량, 군수물자를 활용하지 못하도록 이것들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소개시키는 명령)을 발동하곤 했다. 피난민은 저마다 산간으로 숨어들어가고 성읍과 도시는 폐허로 변해 있었다. 이와 달리 일본군은 칠천량의 대승으로 조선 수군이 완전히 전멸한 것으로 판단하고 지상전 중심의 호남 점령 전략을 추진했다. 일본군은 바다를 돌아 서해로 진출하는 대신 경상도 사천에 상륙해 서북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남원성을 점령하고 전주마저 점령했다. 임진왜란 이후 수군의 제해권 장악으로 안전했던 호남은 갑작스런 일본군의 진격과 학살, 약탈로 생지옥으로 변해버렸다.

1597년 8월3일 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 재임명 교서를 받았을 때 그에게는 군관 9명과 군사 6명뿐이었다. 수군이 궤멸하고 호남지역의 지상군마저 스스로 무너져내리는 처참한 상황에서 그는 교서 하나만 들고 거대한 파도처럼 밀어닥칠 적을 맞아 싸울 준비를 해야 했다. 거의 무와 다름없는 상황에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이 역경에서 순신이 선택한 길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1) 희망부터 복원한다 (2) 판단은 빨리, 행동은 총력전으로 (3) 내가 잘하는 싸움으로 판을 이끈다 (4) 죽으려 하면 산다

희망 복원, 빠른 판단, 총력 행동

첫째, 그는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된 뒤 경상도 운곡에서 하동, 구례, 곡성, 보성으로 이동하면서 백성들과 지방 수령들에게 희망을 전파한다. 백성들의 호응과 지원이 없으면 전쟁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그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던 백성들에게 자신이 복권됐으므로 믿고서 생업에 종사하라고 설득한다. 백성들은 “사또가 다시 오셨으니 이제 우리는 살았다”고 환호하며 다투어 술을 갖다 바칠 정도로 호응한다. 이와 함께 일본군의 호남 진격으로 목숨을 걱정하던 수령들에게도 행정력을 복원해 전쟁에 다시 임할 것을 독려한다. 그 결과 군사들의 모병이 가능하게 된다. 피난민은 줄고 백성들까지 참여하는 총력전 체제가 급속도로 자리잡게 된다.

둘째, 순신은 급박한 상황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정확하게 판단한 뒤 곧바로 실천해나갔다. 그가 삼도수군통제사에 재임명된 8월3일부터 명량대첩이 벌어지게 될 9월16일까지 가진 시간적 여유는 고작 한달 열흘. 그사이 그는 총력을 다해 아직까지 안전한 군량창고를 최대로 확보하고 남은 군함을 찾아내 함대를 재편성한다. 이와 함께 수군 장수들을 확보하고, 군사들도 계속 충원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군기확립을 위해 휘하 장수 이몽구가 명령을 실행하지 않았다는 죄목으로 곤장 80대를 치는 등 근본을 철저하게 다졌다.



△ 명량해전도1. 일본 군함이 밀집 형태로 해협을 통과하여 이순신 장군의 기함을 포위하고 있다.
뒤편으로는 조선 수군의 군함 12척이 일렬횡대로 늘어서 있다.


셋째, 그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싸움터, 바다를 끝까지 지켜냈다. 그는 기본적으로 임진왜란에서 조선의 바다가 얼마나 중요한지 철저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전략 개념이 불명확한 조정에서는 한때 남은 군함이 12척에 지나지 않는다는 보고를 받고 “약한 수군력으로 더 이상 해전을 수행할 수 없으면 육지로 올라와 육전을 해도 좋다”는 명령까지 내린다. 그러나 그는 절대 해전을 포기해서는 안 되며 12척의 군함으로 적을 막아내겠다는 강한 결의를 보였다. 순신은 나아가 이 바다의 전장을 치밀하게 연구해 명량해협에서 적을 저지·격파하는 전술을 세운다.

넷째, 병력과 군함 수, 그리고 화력 등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한 조선 수군이 막강한 일본군에게 승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오직 죽을 각오로 싸울 때라야만 기적이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결사의 각오를 현실화하면서 기적은 일어난다. 세계사에 기록된 해전,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것이다.



△ 임진왜란 때 조선 수군의 주력 무기로 활용된 대포격인 총통. 이 총통을 배에 장착해 대장군전, 단석, 화포, 조란탄 등을 발사했다.


명량해전(울돌목 싸움)은 순신의 해전 가운데 가장 눈물겹고 감동적인 전투이다. 조선 수군이 사실상 궤멸된 뒤 약해질 대로 약해진 수군을 동원해 일본 수군 대함대에 맞서 기적 같은 승리를 쟁취했기 때문이다. 당시 명량해전 직전까지 순신이 동원할 수 있었던 배는 군함 13척과 초탐선 32척뿐이었다. 초탐선은 첩보선으로 활용할 수는 있었으나 승선 인원이 적고 무장력도 약해 실제 해전을 수행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에 반해 칠천량에서 승리한 일본 수군은 최소 133척 이상의 군함으로 이뤄져 있었다. 일본 군함의 수는 <이충무공전서> ‘행록’에는 333척, <징비록>에는 200여척, <명량대첩비>에는 500여척, <난중일기>에는 133척으로 기록돼 있다. 이러한 군함 수의 차이는 울돌목 포구가 좁아서 싸움에 직접 참가한 일본 군함과 후방의 넓은 바다에서 전투 결과를 지켜보던 일본 군함이 분리돼 있었던 데서 생겨났다.

울돌목의 조류가 바뀌던 순간

9월16일 이른 아침, 셀 수 없이 많은 일본 함선이 명량해협을 향해 오고 있다는 첩보가 전해지면서 명량해전은 시작됐다. 일본 함선이 통과하려는 해협은 지금의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반도와 진도 사이에 있는 길이 2km 정도의 수로다. 평균폭이 500m지만, 배가 다닐 수 있는 가장 좁은 곳은 150m에 지나지 않는다. 암초가 많기 때문이다. 최저수심은 1.9m이며, 조류의 속도가 11.5노트로 매우 빠르다. 예부터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울음소리 같다고 해서 울돌목이라고 불렀다. 일본 수군은 명량의 순류를 타고 거침없이 전진해왔다. 일본군 함대는 해협을 따라 좁고 길게, 거의 2km에 걸쳐 행렬을 이룬 채 다가왔다. 순신은 군함 13척을 일렬 횡대로 쭉 늘어세워서 적과 맞섰다. 그러나 순신의 독려에도 조선 수군의 전열은 무너졌다. 명량의 급류를 역류해서 맞아야 했기 때문에 격군들이 노를 힘껏 저어도 조금씩 뒤로 밀린 것이다.

순신의 기함은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적을 기다렸다. 일본군은 순신의 기함을 보자 한꺼번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때 순신이 기수에게 신호를 보냈다. 기수가 깃발을 올리자 육지 양쪽 끝에 숨어 있던 장정들이 물레를 돌려댔다. 물레에 연결된 채 바닷속에 늘어져 있던 쇠줄이 팽팽해지면서 위로 당겨졌다. 일본 배 밑바닥이 뾰족한 것을 이용한 철쇄전법에 앞장선 선두함이 걸렸다. 그 뒤를 빠른 조류를 타고 달려오던 다른 배들이 들이받기 시작했다. 연달은 추돌 현상으로 일본 배들은 급속도로 진형이 무너져갔다. 혼란에 빠진 일본 군함을 향해 일제 공격이 벌어졌다. 조선 군함에서 탄두에 철갑을 두른 초대형 화살인 대장군전이 발사됐다. 머리통만 한 단석들도 발사됐다. 화포와 조란탄도 발사됐다. 순신의 기함이 분전하면서 조선 수군의 다른 함선들도 총공격에 나섰다.

17전 17승, 가장 빛나는 승리






△ 거북선 내부의 모습. 거북선 안에서 총통을 발사하는 조선 수병의 밀랍인형 모형.

 

순신의 기함이 붉은 갑옷을 입은 채 죽은 적장 구루시마 미치후사의 주검에서 목을 베어 내걸었다. 일본군은 동요했다. 다시 조류가 조선 수군의 순류쪽으로 바뀌자 전세는 완전히 조선 수군쪽으로 기울었다. 일본 수군은 결국 철수하기 시작했다. 조선 수군이 13척의 배로 133척이 넘는 함대를 이겨낸 것이다. 이 전투에서 일본 수군은 31척이 격침된 반면 조선 수군은 한 척의 피해도 없었다. 이 해전으로 조선 수군은 호남 지역의 제해권을 되찾게 됐다.

순신이 일본군과 싸운 전투는 대략 17차례. 그는 이 전투에서 모두 이겼다. 17전 17승을 거둔 것이다. 이 전투 가운데 가장 빛나는 것이 바로 가장 최악의 조건에서 싸워 이겨 정유재란의 운명을 사실상 결정한 이 명량해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전 생애와 전 지식, 전 역량을 던져 조선의 운명을 바꿔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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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일본에게도 군신

러-일 전쟁 때 러시아 발틱함대를 격파한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승전 뒤 자신을 넬슨 제독에 버금가는 군신(軍神)으로 치켜세우는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영국의 넬슨은 군신이라고 할 정도의 인물이 되지 못한다. 해군 역사상 군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제독이 있다면 이순신 한 사람뿐이다. 이순신과 비교하면 나는 하사관도 못 된다.”
당시 도고 함대의 수뢰사령(水雷司令)인 가와타 쓰도무 소좌는 ‘함대가 출동할 때 이순신 장군의 영에게 빌었다’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마땅히 세계 제일의 해장인 조선의 이순신을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인격, 그의 전술, 그의 발명, 그의 통제력, 그의 지모와 용기, 그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상찬의 대상이 아닌 게 없다.”



△ 한산도 제승당에 있는 노량해전 그림. 이순신 장군이 적탄에 맞아 숨진 것을 숨긴채 전투를 벌이고 있다.

 

나아가 일본은 일제시대에도 통영 충렬사에서 진해 해군사령부의 주도로 이순신 장군에 대한 진혼제를 지냈다고 한다. 과거 일본의 적장이었던 이순신을 사실상 그들의 군신처럼 떠받든 것이다. 일본의 국민작가로 ‘국사’(國師)라는 칭송을 받은 시바 료타로는 이런 이순신 열풍에 대해 이렇게 풀이했다.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 해군을 창설한 뒤 아직 자신이 없었기에 동양권에서 배출한 유일한 해군 명장 이순신을 연구하고 대단히 존경하게 됐다.”

<근세일본사>에는 이순신과 노량해전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이순신은 이기고 죽었으며, 죽고 나서도 이겼다. 조선전쟁 7년 동안에… 참으로 이순신 한 사람을 자랑 삼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수군의 장수들은 이순신이 살아 있을 때에 기를 펴지 못했다. 그는 실로 조선의 영웅일 뿐만 아니라 동양 3국을 통틀어 최고의 영웅이었다.”

한편 구한말에 활동했던 미국의 선교사 겸 사학자로 <대한제국흥망사> 등 역저를 남긴 헐버트(H. B. Hulbert)는 한산대첩과 관련해 이렇게 평가한 바 있다.

“한산도 해전은 조선의 살라미스 해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해전이야말로 도요토미의 조선 침략에 사형 선고를 내린 것이며, 도요토미의 명나라 정벌의 웅도를 좌절시킨 일전이었다.”


*살라미스(Salamis) 해전: 기원전 480년 아테네 함대를 주력으로 한 그리스 함대가 병력과 장비가 우세한 페르시아 해군을 폭이 좁은 살라미스만으로 유인해 대승을 거둔 전투.

<오귀환 / 한겨레21 전 편집장 · 콘텐츠 큐레이터>

(한겨레21 2004-10-19)




※ 명랑대첩비






△ 명랑대첩비 : 보물 제503호
 

명랑대첩을 기념하기 위하여 숙종 14년(1688년), 대학자 이민서가 비문을 짓고 당대의 명필 이정영, 김만중이 글을 쓴 명랑대첩비가 세워졌다.

그러나 1942년 일본의 조선총독부에 의해 높이 2.67m, 폭 1.14m나 되는 거대한 비석은 경복궁 근정전 뒷뜰에 묻혀 버렸다. 당시 일본인 경찰들은 비석을 아예 없애려 하였지만 비석을 옮기는 도중 인부와 목수가 죽는 등 불길한 일이 일어나자 감히 실행을 못하고 그냥 땅속에 묻어 버린 것이다.

해방후 수소문 끝에 땅속 깊이 묻혀 있던 명랑대첩비를 발견하게 되었고 1950년에 노력끝에 비각이 만들어져 비를 세울 수 있었다. 명랑대첩비는 1965년에 보물 제503호로 지정되었고 1966년에는 사당이 지어졌다.

명랑대첩비는 국가의 대난이 예상될 때면 검은 물이 비석에서 흘러나오는 신비한 영험을 갖고 있어 학계를 놀라게 했다. 지금까지 6.25 한국전쟁과 1980년 5.18광주 민주항쟁 당시 나라를 걱정하는 눈물을 흘렸다한다. 밀양에 있는 사명대사비와 함께 신비한 비석으로 알려지고 있다.

(위치 : 전남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 1186-7)






[이순신 1] 이순신, 내부의 적과 싸우다

충무공 이순신 어록과 난중일기

거북선 원형 베일 벗나



k365 - 한국해, 독도, 고구려사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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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터리/역사 포럼
밀리터리, 군사 과학, 그리고 역사와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을 위한 게시판.
역사 속의, 또는 현대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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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처럼 극불리한 상황에서 소수의 사상자만 내고 이긴 전투들 사례 궁금합니다
쇼타
http://www.joysf.com/4480343
2013.04.24 01:43:16 (*.114.31.222)
1528
질문
명량해전은 적군이 우리보다 10배나 많은 극불리한 상황에서 겨우 2명의 사상자만 내고 기적적으로 이긴



전투입니다.



역사적으로 명량해전처럼 적이 아군보다 수가 많은 극불리한 상황에서 소수의 사상자만 내고 기적적으로



이긴 전투들 사례 좀 알려주십시오.



관련 사례를 찾기가 힘드네요.



검색해보면 금기병 20명이 수천의 송나라 병사들을 휩쓸었으면서도 사상자 제로가 나온 사례와



술라의 사례 빼고는 명량해전과 유사한 기적적인 전투 사례 찾기가 진짜 힘드네요.



최근 사례로는 이라크전 때 20명 정도밖에 안되는 영국군 소대가 탄약이 다 떨어진 상태에서 총검돌격을 감행해서



100명 이상의 저항군을 사살하고 포로로 잡았다는데도 불구하고 사상자 제로였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사례가 그나마 명량해전과 맞먹을만한 기적적인 전투에 해당된다고 봄)



아무튼 검색해보니 위 사례들 빼놓고는 명량해전과 맞먹을만한 기적적인 전투는 찾기 힘드네요.



잘 아시는 분 댓글로 설명 부탁드립니다.



여담이지만 실제 역사가 픽션보다 더 픽션 같네요.



아마 역사에 대해 관심없는 외국인한테 명량해전 사례와 은하영웅전설의 얀웬리 이젤론 무혈입성-



이 2가지 사례를 들려준 다음 어느 게 소설이고 어느 게 역사냐고 질문하면



명량해전이 소설이고 이젤론 무혈입성이 역사라고 대답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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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4 08:56:08 (*.36.69.8)
무르쉬드

명량해전은 지휘자이신 이순신장군도 하늘의 도우심이다라고 할 정도였으니 말 다한 거죠. 물론 장군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는 다 하고 벌인 일이지만 말입니다. 그러기에는 일본이 동원한 물량은 어마어마하죠.




인류 역사를 통틀어 볼때 어떤 전략전술가도 물량앞에서는 무력할 뿐입니다. 내가 100을 상대로 이겼는데, 상대방은 100단위 병력 한다스 이상 준비하고 있으면 말 다한 거죠. 그런 상황을 뒤집어 버린 거니 어쩌겠습니까?




그저 현실은 창작을 능가하는 경우라고 밖에.. 기적은 이런 경우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단어죠.


2013.04.24 09:28:26 (*.113.52.15)
cydonia

이스라엘전 탱크전 영웅....

이랑..



영화로도 만들어진 2차 세계대전때 먼치킨 스토리랑...(이분은 람보급)



소드마스터 척준경..



등등 전투쪽으로 가면 기가 막힌 이야기들 많죠.



물론 전쟁에선... 물량을 당해내기란 힘든 일입니다만.



소수 병력으로 다수 병력의 물량을 막아내는 건 정말 역사에서도 드문 일인 것 같습니다.




2013.04.24 12:11:18 (*.144.104.51)
네드리

소수의 병력이 다수의 병력을 맞아 이긴 사례는 생각보다는 많습니다.




가장 흔한 건 방어전이죠. 사하라건 라이언 일병 구하기건 전쟁영화 보면 꼭 적들은 새까맣게 몰려오고 소수의 아군이 열심히 막다가 탄 떨어질 때쯤에 지원병력이 꼭 나타나곤 하지만...어쨌건 자리 좋은 데 진지 구축하고 앉은 방자가 공자보다 유리한 상황인 건 고대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래서 공격측에서는 병력을 더 많이 투입하게 되는데도 실패할 가능성은 존재하는 거니까요. 우리나라만 해도 국사시간에 배우는 행주산성 같은 것부터 시작해서 베트남에서 해병대 1개 중대가 7~8배의 월맹 정규군을 막아냈던 짜빈동 같은 사례들이 많죠.




미국이나 영국처럼 세계 각국을 찌르고 다니는 돈 많은 나라들은 소수의 병력이지만 항공지원 등의 우세를 활용해서 아까 말한 영화 같은 사례들을 진짜로 찍기도 합니다. 가령...흠, 미르바트 전투 같은 거? 1972년에 SAS 대원 9명이 오만에 병력 훈련시키러 갔다가 게릴라 병력 300명에 맞서 방어전을 치른 적도 있죠. 자기들이 훈련시키던 병력은 도망가버리고, 그래서 6명이 쏴야 할 야포를 사람이 없어서 대원 한 명이 혼자서 쐈고, 결과적으로는 9명중 3명이 죽었고 항공지원하고 추가 병력이 와서 살아남기는 했습니다만, 전사를 뒤져보면 혼자서 기관총 하나 잡고 몇십 명 이상의 병력을 막아낸 경우도 있고, 화력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현대에는 아주 드문 일은 아닙니다.





물론 이 사례에서는 그만큼 병력의 질이 더 우수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찾을 수 있습니다. 병력의 경험과 훈련량, 장비의 차이 역시 무시할 수 없죠. 병자호란의 쌍령전투 같은 데서는 훈련이 거의 안 되어 있던 조선군 4만명이 청 기병 400명에게 박살이 났던 거라던가. 2차 대전 당시 필리핀 해전,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에서는 훈련 잘되고 우수한 항공기로 무장한 미해군이 일본군 전투기를 1:10의 교환비로 격추시켜댔고 로데지아 내전에서는 베테랑 다국적 용병들이 다수 포함된 정부군이 반군에 대해 1:8 이상의 교환비를 냈죠. 아니면 잉카 문명을 멸망시킨 콩퀴스타도르들, 식민지 시대에는 소수의 '문명화된 군대'들이 개틀링 기관총으로 창칼로 무장한 원주민들을 쏴댔지만 이건 학살인지 전투인지조차 애매하고.





헌데 명량해전 같은 경우는...물론 함선 자체의 우위가 있긴 했지만 결정적 요소는 지휘관이었으니까요. 그것도 한쪽 지휘관이 엄청 무능해서 진 게 아니라 다른쪽 지휘관이 엄청 유능해서 이긴 사례는 정말 찾기 힘들 거라 봅니다.



2013.04.24 12:31:21 (*.187.72.36)
호돌이
심지어 명량해전은 처음부터 13척이 일치단결해서 해협 틀어막고 싸운 것도 아니라 통상 대감 승선한 상선 한척이 혼자서 무쌍 찍다가 나중에서야 한두척씩 슬금슬금 합류했다는 게 함정(...)


2013.04.24 12:41:56 (*.237.10.21)
Pester

술라와 동시대의 인물이긴 하지만, 공화국의 장군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가 티그라노케르타Tigranocerta 전투에서 1만명의 보병과 600명의 기병을 이끌고 아르메니아의 25만 보병과 5만 기병을 상대해서 대승한 기록이 있습니다. (Apianus, 12:84-85) 로마군은 부상 100명에 전사자 5명에 아르메니아는 10만 5천 명 이상이 전사했습니다.


2013.04.25 14:18:44 (*.28.48.85)
Dumb In Physics (DIP)
살수대첩은 어떤가요?


2013.04.25 18:35:50 (*.145.41.103)
H2K

한국이 소수에게 대패한 전투는 교과서에 실리지 않아서 그렇지 은근히 많은데 그중에서 top3를 꼽으면, 위에 언급된 병자호란의 쌍녕전투, 임진왜란의 용인전투, 한국전쟁의 현리전투는 굴욕과 비참함 그자체랄까요...



국지적인 전투에서 소수가 다수를 물리친 사례는 워낙 많고, 특히 산악 지형이 많고 화기로 치뤄진 한국전쟁에서는 연합군이 우월한 수의 중공군을 상대로 부족한 쪽수를 화력으로 제압한 사례가 그득합니다.(베티고지 방어, 지평리 전투 등등등)



그 외에 딱히 생각나는 것은 겨울전쟁의 핀란드의 방어전이나 4차 중동전쟁의 골란고원 방어....전쟁의 꽃인 회전은 잘 모르겠네요


2013.05.06 02:28:18 (*.170.106.124)
카프카스

비율로만 따지면 곤양대전과 비수대전을 빼놓을 수가 없죠.

사서에 언급된 내용만 놓고 본다면 그야말로 엄청나니까요..




명량해전을 13:133이라고 치면 아군의 규모는 적의 9.7%

비수대전 같은 경우에는 8만 vs 80만 정도라고 하니까 10%




곤양대전은 "수천기" vs 42만이라고 하니까, 유수의 병력을 "수천"의 최고한계로 쳐서 한 9천명이라고 치면 2.14%...


2013.05.24 11:22:21 (*.216.141.146)
참솔
http://blog.naver.com/terry_ani/20146677328

   
  47 고창 문화원 발행 책자 부탁 이영호 2014/10/2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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